Category: 오드리의 피겨이야기

  • 피겨스케이트 쇼셜미디어 포럼에 대한 생각 🧐

    I love figure skating and I have been watching for a long time. There is something I have noticed across all social media platforms: toxic skating fans…, (어떤 쇼셜미디어 플랫폼에 올라온 첫 글귀중.)

    흠… 내 생각에는 이건 팬덤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팬을 사칭해서 여러 계정을 만들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

    나도 2022년이었나? 한때 우리 아이에게 어떤 한국에 피겨 스케이팅 포럼에서 정말 보기 힘든 욕설을 하는 걸 발견한 적이 있었거든. 미국 사는 내가 그 포럼을 알리가 없었지만 .., 한국에 자주 가서 피겨를 배우는 한인 피겨맘이 나에게 그 글들의 링크를 보내주었고 …,그래서 도대체 이런 글들을 올리는 사람들의 정체가 뭔지 너무 궁금했어.

    우리 아이는 미국 선수이긴 하지만 미국의 탑도 아니고… 그냥 한인으로서 열심히 미국 국가대표를 유지하고 있는 선수야.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욕을 하고 싶을까 정말 의문이었어.

    그런데 결국 알고 보니 아는 사람들의 짓이더라고.

    나는 한 피겨 선수의 어머니 되는 분이, 하루 종일 그 욕설이 난무하는 게시판을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어.

    정말 안돼 보였어. 나이도 있는 엄마라는 분이….

    미국에도 그런 비슷한 곳들이 있는데, 거긴 그래도 노골적인 욕설은 안 하더라. 대신 몇몇이 여론몰이를 하는 식이지.

    그래서 그런가 봐. 얼굴도 드러내지 않으니 편하게 경쟁구도에 있는 선수들을 깎아내리면 뭔가 속이 풀리는 줄 아는 것처럼 행동하더라.

    근데 생각해보면, 어느 ‘팬’이 그렇게까지 선수들이 훈련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알고 있을까?

    결국 자작극까지 벌이면서 말이야.

    스레드에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맘, 피겨맘들도 있으니까, 나는 차라리 내가 누구의 엄마인지 밝히고 제대로 말해보고 싶었어.

    정말 스포츠와 피겨를 사랑하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우리부터 이 종목을 보호하고 더 깨끗하게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아이들 모두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는지 우리도 알잖아.

    특히 우리처럼 외국에서 피겨하는 한인 선수들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겉으로는 티 안 나도 보이지 않는 견제와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잖아. 그럴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

    속상한 상황에 처할때 몇 번씩 그만두자고 생각한 적도 있고… 그러다 또 아이 마음 다칠까봐 후회하고.

    팟캐스트다, 도네이션 받는 채널이다 하면서 특정 선수나 팀만 띄우는 곳들도 많더라. 이런 곳에 도네이션 하는 부모들도 있어. 그러면 그 선수나 팀 좋은 이야기 해 주고 .

    피겨 선수출신을 제외하고 말이야…. 정말로 수십 년을 아이를 챙기며 피겨세계를 지켜본 부모들보다 이 비전문가 팟캐스터들이 뭘 얼마나 더 잘 안다고 떠들지??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가려서 듣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곳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해.

    내 딸아이가 이 피겨를 얼마나 더 하겠다고 할 지는 모르지만 …,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게 두고 싶어. 이제는 성인이니.

    해외에 흩어져 사는 우리 디아스포라 한인 스포츠맘들만큼은, 적어도 이 스레드에서는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줬으면 해. 물론 나와 세상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너무 아니다 싶으면 조용히 끊어내면 되고 .

    우리 한인들이 잘 뭉치지 못하는 게 약점이라지만, 앞으로는 정보를 나누고 서로 돕다 보면,

    미래에는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또 다른 국가에 있는 한인 선수들 중에서도 한인 저지, 훌륭한 코치, 탑 선수들 그리고 연맹 내 한인 인력이 많이 자리 잡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

  • 페어팀 오드리와 블라지의 시작 #15

    오드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전 페어선수이자 코치인 브랜든에게 페어 기술을 배우던 중, 블라지를 만났어. 당시 그는 중국계 여 선수와 페어 팀을 이루고 있었어. 알고 보니 블라지는 예전에 콜로라도 페어팀 소속으로, 백인 여자 파트너와 함께 주니어 네셔널 챔피언 팀도 되었던 선수였어. 하지만 그 팀의 코치가 문제가 생기면서 팀을 떠났고, 헝가리출신 이중국적인 그는 잠시 헝가리 국가대표로 러시아에서 훈련하기도 했다고해. 그 시절은 정말 힘들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오드리가 처음 콜로라도에 왔을때도 페어팀 코치는 오드리의 작은 체구가 페어로 적당하다고 관심을 보였지만, 당시 해드코치였던 태미는 오드리가 싱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페어 전향 가능성을 일축했었다는 모르고 있던 이야기도 듣게 되었어. 그러다 몇년의 시간이 흘러 블라지를 어바인에서 만난 거였어. 블라지는 어바인에서 함께 훈련하던 파트너와 결별한 직후, 오드리에게 트라이아웃을 제안했고 2024년 4월에 어바인 코치와 함께 콜로라도로 와서 온아이스와 오프아이스에서 오드리와 트라이 아웃을 하게 되었어.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고, 자연스럽게 파트너십이 성사됐지.

    이후 블라지는 캐나다의 브루노 마콧 코칭팀으로 페어팀 자체의 훈련지와 해드코칭팀을 옮기고 싶어 했고, 오드리도 그의 결정을 존중해서 캐나다에 함께 트라이아웃을 다녀왔어. 페어 경험이 없던 오드리는 블라지의 의견을 존중하고 코칭팀을 정하는 데에 대한 부분에 그의 결정을 믿고 따르기로 한 거야.

    오드리는 본래 다니던 대학을 더 이상 풀타임으로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일단 온라인 수업으로 두 과목만 수강한 채 캐나다 훈련지로 이동해야 했어.

    콜로라도에도 새로운 페어 코칭팀이 문제가 있던 코치가 월드 아레나를 떠나고 그때부터 새로운 팀을 꾸려 자리잡아 내셔널 시니어 , 주니어 챔프팀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월드에서 여전히 미국의 페어는 월드무대에서는 최상위권에는 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페어 스케이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오드리의 페어 전향과 함께 나는 미국 페어팀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어. 여러 경기를 찾아보면서 공부도 하고, 각 팀들의 구성과 스타일을 분석하게 되었지. 페어는 싱글에 비해 잦은 사고 부상의 위험이 늘 있고 여자 선수가 일단 겁이 많으면 도전하기 힘든 종목이고 파트너와의 신뢰 믿음이 아주 중요한 종목이란걸 느낄수 있었어.

    누가 날 잡아 던지고 공중위로 날리는데 다시 잡아줄거란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

    오드리의 가장 큰 장점은 싱글 스케이팅에서 다져진 점프 실력이었어. 미국의 많은 여자 페어 선수들이 단독 점프에서 잦은 실수를 하고 있었고 쓰로우 점프도 믿고 볼수 있는 팀이 없었어. 그래서 오드리의 싱글 커리어에서의 점프 기술은 큰 강점으로 작용한 거였지.

    간단한 힙 수술을 해야했던 블라지는 회복시간을 보내고 본격적으로는 6월에 팀으로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어.

    그렇게 해서 오드리와 블라지는 새로운 팀을 이루게 된 거였어.

    https://www.nbcsports.com/olympics/news/audrey-shin-balazs-nagy-figure-skating-pairs#

  • 오드리 페어에 도전하다. #14

    2024 내셔널이 끝나고, 오드리는 바로 다른 주로 향했어.

    페어 트라이아웃 일정이 잡혀 있었고, 그쪽의 페어 코치와 남자 선수가 오드리와의 트라이 아웃을 원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상황이었어. 비행편과 숙소까지 전부 제공하면서.

    사실 오드리가 처음 “페어를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이미 몇몇 연맹 관계자들 을 통해 오드리를 드림 페어 파트너로 지목했던 남자 선수가 있다고 오드리에게 이를 알려주고 연락이 닿도록 연결 시켜줬고 트라이아웃까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상황이었어. 그런 사실을 나와 남편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솔직히 부모로써 페어라는 종목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던 나와 내 남편은 이 모든게 당황스럽고 걱정이 앞섰지.

    콜로라도에 처음 왔을 때 월드 아레나에서 훈련 중이던 페어 선수들과 코칭팀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이후에 그 코치가 safesport에 고발되어 오랜 시간이 거친 조사 끝에 평생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사건도 있어서 그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에겐 어쩌면 자연스럽게 페어에 대한 편견이 생겼던 것 같아.

    다른 주에서 트라이아웃을 마친 후, 현지 코치와 페이스타임 미팅을 했는데 코치는 오드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고 곧바로 파트너십을 맺자고 제안했어. 그쪽에서 다닐수 있는 대학 편입에 홈스테이까지 알선 본인 소유의 차까지고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지.

    하지만 그 이후, 그쪽에서 훈련했던 부모님들이 거기 코칭팀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결정적으로 해당 남자 선수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즉, 미국 대표로 월드까지는 가능 하지만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어.

    오드리는 싱글로는 어느정도 미국에서 알려진 선수였으나 페어는 모든 기술을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단계라 그런 상황에서 불안 요소가 많은 팀과 파트너십을 맺는 건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부부는 결국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일단 실력 있는 페어 출신 코치들에게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며 정말 오드리가 페어에 적합한지 본인이 판단해 보라고 마음이 바뀔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지.

    그래서 시카고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전 페어 선수이자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인 크리스와 브랜던에게 각각 2주씩 배우러 다녀오게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판단이 참 다행이었던 거 같아.

    오드리가 오랜 시간 싱글 피겨선수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뜻만으로 그만두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꼈어. 아이한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과연 ‘페어’라는 종목이 오드리에게 맞는지, 스스로 직접 경험해보게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했어.

    물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지금 활동 중인 미국의 페어 여자선수들만 봐도 대부분 최소 4~5년 이상 페어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니까. 기술적인 부분도, 몸의 감각도, 다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

    2024년 미국 내셔널 페어 경기 결과를 봐도, 그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었어.

    당시 쇼트와 프리를 합쳐 1위를 한 팀조차 프리에서 두 번의 fall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클린 경기를 한 팀은 단 한 팀도 없었거든.

    평가도 솔직히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고, 미국은 그 당시 페어 종목에서 월드에선 메달권과 거리가 멀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던 거지.

    싱글(남녀)과 아이스댄스는 이미 월드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페어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어.

    그런 현실을 보면서 더더욱, 우리 입장에서는 오드리가 페어로 전향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일단 기초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배우게 하고, 경험 속에서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로 했던 거야.

    2024 1월 페어 트라이 아웃
    크리스, 브랜던과 페어 레슨 (오드리의 당시 인스타그램 중)
  • 오드리의 마지막 싱글 선수로의 시즌, 그리고 깜짝 통보 #13

    2023–2024 시즌은 피겨맘인 나에겐 오드리가 피겨 선수로 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마무리 하는 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난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번 시즌이 오드리의 선수로 마지막 시즌이 되겠구나” 하고.

    솔직히 좀 지쳐 있었어. 그 시즌에 첼린지 대회, 그랑프리 대회도 캐나다랑 중국 두 군데 배정받았는데 마음만 무겁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지. 그래도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후회없이 해보자는 거였고, 그래서 오드리는 시즌 준비하면서 워싱턴 DC에 있는 친구 집에 콜로라도가 여름 방학을 시작하는 5월 이른 중순부터 머물렀어. 그곳에서 가까운 버지니아에 일리아 말리닌의 부모님이자 코치인 로만이랑 타티아나에게 점프 기술 지도를 받았지.

    이건 그냥 갑자기 코치를 바꾼 게 아니라, 원래 해드코치인 태미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 뒤 허락을 받고 결정한 거였어. 오드리 점프에 항상 문제가 됐던 “랩(wrap)“을 좀 더 근본적으로 고쳐보고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 해 보자는 생각이었거든. 태미도 우리 의견을 존중해줬고, 로만이랑 타티아나는 어릴 때부터 일리아와 매년 스케이팅 캠프에서 만난 오드리가 친구란 이유도 있었고…,진심으로 정성껏 가르쳐주셨어.

    사실 우리도 알아. 점프 기초는 어릴 때 잡힌 게 쉽게 안 바뀐다는 거. 로만과 타티아나도 그렇게 말했어. 기술은 결국 어릴 때 반복 훈련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하는 거라고. “Muscle memory”를 강조 하셨지.

    오드리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어려서 잘못 습득한 기술을 안타까와 하셨어.

    그 얘기에 공감도 많이 됐고,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최선을 다 해 오드리를 서포트 해 주고자 했던 부모로써의 마음이었어.

    오드리는 그 시즌 태미와 타티아나를 공동 코치로 두고 훈련했는데, 그랑프리 중국 대회는 타티아나를 코치로 동반, 출전하기도 했지.

    정말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싶었던 오드리의 마지막 선택을 우리는 서포트하려 했던 거였어.

    그렇게 2023년 중요 국제 경기들을 치루고 2024 내셔널 준비에 들어가고 있을 때였어.

    오드리가 갑자기 어느날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엄마, 아빠 나… 페어 한번 해보고 싶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지. “뭐? 지금? 왜?”

    근데 오드리 눈빛이 진지했어. 그날 이후로 우리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지.

    2022 Kings Cup Internationals
    2023 Cup of China
    2023 CS Autumn Classic Internationals
    2023 Cup of China GP with Tatiana Malinina
    2023 스케이트 캐나다 GP SP
  • 엄마 눈에 비친 오드리의 2022~2023 시즌 이야기 #12

    2022~2023 시즌은 기쁘고 감사한 순간도 있었고, 아쉬움과 고민도 함께했던 그런 시즌. 돌아보면 이 시즌은 오드리가 싱글 피겨 선수로서 고민이 많았던 때였어. 오드리는 노비스 시절 이미 3Lz+3T를 뛰었었고 점프 구성도 탑 선수들과 나란히 했지만 잘못 배운 기초를 고치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기면서 시니어 2년차 되던 해 부터 해드 코치가 컴비네이션 점프를 3T+3T로 낮췄어. 이유는 오드리가 토우룹 점프를 잘 뛰었고 이런 구성으로 오히려 가산점을 받자는 거였어. 구성을 낮춘다는 건 좀 속상한 일이었지만 코치의 의견이 맞는 이야기 였고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점점 3Lz+3T랑은 거리가 멀어지게 되더라고. 김연아 선수가 멋지게 뛰던 점프라 많은 선수들 특히 한인 선수들은 이 컴비네이션 점프를 좋아해!

    그 해 쇼트 프로그램은 탱고 오페라 “María de Buenos Aires” 중 “Yo Soy Maria”라는 곡으로 안무는 Pasquale Camerlengo가 해주셨고, 오드리는 그동안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했어. 음악은 항상 남편이 많이 골라주는 편이었는데 시니어로 올라가면서는 코치의 의견도 많이 더 해졌지. 프리 프로그램 은 쇼트 안무가가 같이 Tosca로 짜주셨는데 크랜베리 경기 이후 어떤 저지가 음악이 너무 오드리에게 무겁다는 의견을 내는 바람에 다시 드류 미킨스가 “The Offering”, “The Giving” , “Heroes”라는 마이클 W. Smith의 세 곡을 믹스해 프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Team USA 선수들은 자주 피드백을 미국안의 국제심판으로부터 받아. 각 미국안에 큰 경기나 챔프캠프 또는 중요한 국제 경기에 앞서서 심판들이 선수들이 훈련하는 링크를 방문해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봐주고 피드백을 주기도 해. “Tosca”는 너무나 오드리가 해 보고 싶었던 곡이었지만 이 시즌 한 번의 경기로 더 이상 사용할수 없었지.

    하지만 “The offering , The Giving 과 Heroes” 이 세 곡들은 오드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CCM 아티스트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였던 Michael W.Smith 곡들이어서 프리 프로그램으로 쓸수 있는 것은 큰 의미가 되기도 했어.

    오드리는 이 시즌에 Cranberry Cup: 1위, CS U.S. Classic: 4위, Grand Prix de France 🇫🇷: 5위, NHK Trophy 🇯🇵: 4위를 하면서 국제 assignments 를 마쳤어 .

    프랑스랑 일본 그랑프리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무대 위에서 오드리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지.

    2023년 1월 전 미 내셔널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

    쇼트는 클린이었지만 점프에서 언더 판정을 받았고,

    언더가 어면한 다른 몇몇의 선수들은 클린을 받기도 해서 판정에 대한 말들이 많았지.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와서인지,

    프리에서는 아이가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였고 표정에서도 기쁨 없이 그늘만 보여서 경기를 지켜보는 나는 마음이 아팠어.

    그 다음 시즌인 2023–2024까지 오드리는 싱글 선수로 계속 도전했고 그동안 해 온 성적을 바탕으로 그랑프리도 출전할수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온 게 아닐까.’

    대학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제는 피겨를 벗어난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 그래도 다시 돌아보면, 그 어떤 순간보다 열심히 했던 걸 엄마인 나는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이랗게 말해주고 싶어.

    “우리 딸, 정말 잘해왔어. 엄마는 늘 그렇게 기억해.”

    2022 Cranberry Cup Internationals 의상이 준비 안되서 예전 의상을 입고 나간 시즌 첫 대회 (Tosca FS)
    ISU 해설 2022 NHK SP
    2022 GP de France Gala

  • 🧊오드리의 2021~2022 피겨 시즌 이야기 #11

    2022년은 전 세계 피겨 팬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베이징 동계올림픽 해였어. 미국 여자 대표로는 벨, 리우, 챈… 이렇게 세 명이 선발됐지. 다들 어릴 때부터 꿈꿔온 무대니까,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어. 오드리는 말은 안했지만 실망도 하고 참 부러웠을 거 같아 .

    오드리는 올림픽 대표는 아니었지만, 대신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사대륙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됐어. 피겨에서 사대륙은 꽤 큰 무대거든. 유럽을 제외한 사대륙이 출전하는 매년 열리는 큰 대회야. 이 대회에서 오드리는 4위를 기록했어. 아쉽게 메달은 놓쳤지만, 시즌 내내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한 시즌을 잘 마무리한 경기였지.

    올림픽 해 미국 내셔널은 말도 못하게 예상 못 한 일들이 많았어. Covid 때문에 몇몇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해야 했고, 그런 상황에서도 기존 성적과 평가로 올림픽 팀에 뽑히는 경우도 있었지. 참… 올림픽 출전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이 맞는듯 했어.

    오드리는 쇼트 프로그램으로 전년도에 했던 ‘The Giving’ (마이클 W. 스미스 곡)을 계속 사용했어. 원래는 새 프로그램으로 바꾸지만, 오드리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고 코치와 안무가가 계속 사용할 것을 추천했대. 오드리의 이미지와 분위기랑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이었어.

    프리 프로그램은 ‘Moonlight Sonata’였는데, 오드리를 위해 안무가 두류 미킨스가 특별히 추천해줬고, 후반부에는 보이스와 현악기 연주가 들어간 특별 편집 버전으로 만들었어. 호불호가 갈리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잘 소화해내서 시즌을 마무리 하는 사대륙 대회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어.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일 때, 러시아 여자 피겨에서 도핑 스캔들이 터졌어. 올림픽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고, 미디어는 축제보다 도핑 관련 뉴스로 가득했지. 피겨 팬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고, 뭔가 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올림픽이었어.

    그래도 오드리는 그런 혼란스러운 시즌 속에서도 많이 또 성장한 한 해였어. 점프 실수 하나에도 눈물이 나고 크게 실망하던 아이가,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해낸 걸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피겨 선수는 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단 걸 느꼈어. 그냥 오늘, 이 하루를 열심히 훈련하고, 또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거지. 사람들은 보통 메달만을 생각해. 특히 한국 사람들은 금메달🥇만 기억하지. 좀 못하면 조롱하는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덜되먹은 어른들도 많아.

    근데 미국에서 딸 아이가 피겨를 하면서, 피겨 안에도 얼마나 다양한 길이 있는지 알게 됐어. 싱크로나 씨어터 온 아이스, 솔로 댄스등, 팀워크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종목들도 많았거든. 주위에 함께 싱글 선수로 시작했던 피겨 친구들이 본인들의 색깔을 찾아 종목을 바꾼 오드리의 친구들도 많았어.

    그래서 그때 난 ‘1등만이 전부다’라는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어. 내 아이가 피겨를 좋아하고, 자기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던… 그런 2021~2022 시즌이었어.

    그리고 감사로 마무리 했던 기억이 나. 🙏🏻💕

    2022사대륙 선수권 대회
    2022 Four Continents SP (ISU 해설)
    2022 Four Continents FS (무해설)
    Moonlight Sonata FS Music
    The Giving 2021-2022 SP Music
    Four Continents Gala
  • 첫 시니어 그랑프리, 2020 스케이트 아메리카 “무대는 달라도, 꿈은 그대로” #10

    2020년 가을,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췄던 시기였어.

    대회는 줄줄이 취소되고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던 그때, 오드리는 잔디밭에서 2시간 넘게 거리두기 오프 아이스를 하며 코치 태미의 지도 아래 성실하게 몸 상태를 유지했어.

    온아이스 훈련이 재개된 후에도, 부모는 훈련장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나도 월드 아레나 주변을 하루 만보 걷기 하며 그 시간을 함께 버텼지.

    그렇게 준비한 첫 국제 시니어 무대가 Skate America 2020이었어. 당시엔 무관중 대회였고, 여러모로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오드리는 담담하게 자신만의 연기를 펼쳤고 기대 없이 출전한 대회에서 동메달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어.

    그 대회는 미국 톱 여자 싱글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던 만큼 그 안에서의 3위는 정말 값진 성과였어. 빙판 위에서 보여준 오드리의 집중력과 진심이 느껴졌고 그 모습에 나도, 남편도 울컥했지. “우리 딸,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싶더라. 무엇보다 그때 오드리의 모습에는 기쁨이 있었고 빙판위에서 두려움이 없이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방송을 했던 타라와 죠니가 칭찬을 했지.

    그리고 이어진 2021 1월 전미 내셔널.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보여준 깔끔한 두 프로그램으로 그땐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출전했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어. 그 나이, 겨우 16살, 곧 17살을 바라보던 해였지. 잘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단 처음 느껴보는 큰 부담과 주목이 너무 컸던 것 같아. 또 그렇게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어.

    오드리는 늘 주목받거나 편애를 받는 미국안에서의 선수는 아니었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과도 마주해야 했지.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건 바로 가족과 부모라는 걸 아이도 잘 알고 있었어. 그 시기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 깊었고, 아이에게도 가족의 존재가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를 느낀 시간이었어.

    ISU 해설 SP
    ISU 해설 FS

  • 포기하지 않았기에 만난 무대, 로잔 2020 유스 동계올림픽 #9

    2020년 로잔 유스 올림픽은 오드리에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어.

    오른쪽 발목 수술을 받게 됐고그때만 해도 다시 얼음 위에 설 수 있을지, 스케이트를 계속 탈 수 있을지 정말 막막했거든. 회복 기간 동안 아이도 많이 지쳐 있었고 엄마인 나도 무기력한 날들이 많았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재활에 집중하는 아이 보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울컥했던 기억이 나. 병원 다니고, 재활 훈련하고, 조금씩 다시 얼음 위에 서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기도가 필요했어.

    그렇게 조금씩 스케이트를 다시 타기 시작하고 경기도 했지만 다시 뛰던 점프를 뛰고 경기를 하기까진 시간이 걸렸어 . 그렇게 돌아온 아이스에서 2020 로잔 유스 올림픽 출전 기회가 주어졌어.

    처음 그 소식 들었을 땐 솔직히 너무 놀라고 감사했어. 몸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지만 본인의 실력으로 인정받아 미국을 대표하게 되었고 그 무대를 위해 다시 집중해서 훈련하게 되었어.

    유스 동계 올림픽은 마치 작은 규모의 동계 올림픽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고 해.

    단순한 경기가 아닌 모든 겨울 스포츠의 다른 종목들이 함께 하고 오프닝 세라모니 클로징 세라모니등 축제 분위기 였다고 해.

    우리 아이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 스스로를 믿고 회복해낸 증거 같은 순간이었고 가슴 벅차고 감동 스러웠던 시간이 되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경험이 오드리에게도 큰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을 거라 믿어.

    해드 코치 태미와 함께한 유스 동계올림픽의 여정은, 오드리가 해드 코치와 더 깊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사명감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어.

    Team USA 입장
    로잔 유스 올림픽 선수촌
    Lausanne 2020 Youth Olympics
    2019 -2020 SP
    2019-2020 FS
  • 함께 걸어온 딸아이의 싱글선수 피겨 여정,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8

    아마 나 혼자 아이 피겨 서포트했으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몰라. 다행히 남편이 함께 좋아해 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남편은 한국에서 7년 동안 광고감독으로 일했어. 풀무원 콩나물, 나드리 이노센스, 신원 에벤에셀 같은 광고들 만들던 사람이야. 뉴욕에 영화 공부하러 왔다가 IMF가 터졌고, 뉴욕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에 정착했어. 결혼 3년 만에 큰애가 태어난게 오드리야. 남편은 운동 신경도 좋아서 어릴 때 좋아하던 스피드스케이팅 대신 오드리가 좋아하는 피겨를 전폭적으로 지원, 응원해 줬어.

    새벽 연습 같이 가고, 시간될땐 늘 아이 훈련 지켜봐 주고, 대회 일정엔 본인 스케줄까지 조정하면서 진심으로 함께해 줬어. 작은 로컬 대회도 빠짐없이 챙겼고, 가족 휴가는 거의 대회 겸 가족 여행이 되었지.

    싱글 선수 시절엔 나도 자주 링크 안에 들어가서 연습이랑 레슨을 지켜봤어. 블리처는 진짜 추워서 겨울 파카에 방석은 필수였지. 다른 부모님들도 늘 옆에 있었고.

    오드리가 가장 싱글선수로 오래 훈련했던 콜로라도 월드 아레나는 타주에서 온 선수들도 많았어. 미국 피겨연맹도 자리 잡고 있고, 예전부터 탑 선수들이 모여서 훈련하는 곳이라 홈스테이 하는 스케이터들도 꽤 많았지. 여름방학에 방문했다가 훈련지를 아예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 아무래도 환경에 자극을 많이 받아서들 이었을 거야. 알려진 선수들이 많이 훈련하고 있으면 좋아보이기도 하고.

    미국에선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보스턴, 시카고, 디트로잇에 코칭팀들이 많아. 디트로잇은 아이스댄스 쪽이 강하고, 페어는 콜로라도랑 보스턴, 캘리포니아, 그리고 요즘은 시카고도 어린 팀들이 잘 자라고 있어.

    온아이스 훈련을 보면서 어머님들 마음에 시험 들 때도 많아. 아무리 마음 넓은 부모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어. 별별 상황을 겪다 보면 피겨맘들끼리는 굳이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지.

    근데 싱글종목 피겨는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가 되는 스포츠 같아.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가면서 점점 그런 점이 느껴져.

    오드리는 12살때부터 탑 레벨 선수들이랑 같이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미국 대표 선수 부모님들 특히 어머님들은 링크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와도 늘 구석에 혼자 조용히 앉아 계시는 분들이 많았어. 굳이 말 안 섞으려고 하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텐데,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자녀가 좀 잘한다고 해서 으쓱할 것도 없고, 괜히 나서서 다른 선수들 부모님과 떠들 필요도 없는 게 이 스포츠 같아. 어릴 땐 그걸 잘 모르고, 괜히 주변 분위기에 휩쓸릴 때도 있지. 그래서 그냥 가끔은 편하게 마음 터놓고 수다 떨 수 있는 스포츠하는 친구 엄마 한 두명만 있어도 정말 큰 위로가 되더라고. 그리고 어떤 곳이든 마음맞는 분들은 한 두명 있더라고.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돼. 부모가 뭘 해주고 결정하던 시기를 지나, 본인이 본인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시점이 와. 피겨는 선수 생명이 짧은 종목이니까, 부모 역할도 결국은 그 선택을 조용히 지켜보고 존중해주는 걸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

    주니어 그랑프리대회에서 Ted Barton과
    고 Frank Carroll (Toyota Sports Center Summer Camp)
    with Michelle Kwan (East West Ice Palace)
    with Scott Hamilton
  • 불량 부츠가 만든 시련, 오드리의 재도약 이야기 #7

    2019 Egna Trophy with Coach Christy Kroll

    오드리는 2019년 1월 전미 선수권에서 2등을 했는데, 몇 달 뒤인 5월에 발목 수술을 받게 됐어. 내셔널 이후 인터내셔널 assignment 를 받아 3월에 Egna Spring Trophy 출전하게 되었는데 발목 안쪽이 점점 커지고 있었어. 경기준비로 내셔널 이후에도 쉴수 없이 계속 훈련을 해야해서 더욱 무리가 가는 거 같았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 준비를 해야 했지.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왠만큼 경기를 마치고 돌아왔고 여러 의사를 만나보게 되었어.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불량(Defect) 부츠에서 시작됐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내부 구조에 문제가 있었던 부츠였고, 그걸 신고 훈련하면서 오른쪽 발목 안쪽에 반복적으로 압박이 가해졌지. 그러면서 결국 건막류 낭종(ganglion cyst) 이 생기고 계속 커지게 된 거야.

    그 부츠 문제가 정확히 밝혀진 건 나중에 발 전문 의사 선생님이 오드리 발 상태를 보고 여러가지 검사 후 확인해주신 덕분이야. 그 선생님이 “이건 단순한 부상에서 온 게 아니라 부츠 구조가 잘못돼 있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하셨고, 그래서 수술 외에는 답이 없었어.

    다행히 콜로라도에서 정말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은 잘 마무리됐고, 재활 과정은 오드리와 우리 가족들한테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 근데 그 선생님이 너무 따뜻하신 분이어서, 낭종에 “Bob”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셨어. “Bob이 오드리를 너무 좋아해서 떨어지기 싫어했나 봐요~” 하시면서, 수술 후 오드리가 깼을 때 실제로 제거된 낭종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시며 농담까지 하시며 오드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어.

    그 이후로도 의사 선생님은 오드리의 부츠와 운동화 인솔(깔창)을 직접 만들어주시고, 필요한 부분을 세심하게 조정해주시고 있어.

    재활 시간은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오드리는 잘 견뎌냈어. 오히려 그 시간을 보내면서 , 자신이 얼음위에서 다시 훈련하고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던 거 같아.

    다시 시작한 훈련에서 점프 감각을 되찾고, 약해진 발목을 강화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어.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낸 끝에, 오드리는 2020년에 미국을 대표해 유스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까지 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