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Nicole Shin

  • 코치를 옮긴 값진 결과: 콜로라도에서의 훈련 #6

    코치를 옮기는 과정에서 연맹 관계자 두 분과 면담을 요청했어. 면담 후, 우리는 태미 갬빌 코치를 따라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훈련지를 옮기기로 했지. 오드리가 여자아이라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스타일의 코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태미 코치는 원래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있다가 콜로라도로 옮기게 됐고, 그 시기에 오드리도 뒤쫒아 가게 된 거야. 집도 못 구한 상태였지만, 짐만 싸서 태미가 알아봐준 스케이터 가족 집에 임시로 들어갔어.

    남편은 결정하면 바로 실행하는 성격이라, 바로 캘리포니아 삶을 정리하고 콜로라도로 출발했지. 7월 초에 이사 가던 날, 운전 중에 엄청난 우박이 쏟아졌는데 거의 아기 주먹만 했어.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에선 본 적 없는 풍경이라 놀랐어.

    콜로라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겨울이 길고 눈도 많이 와. 고산 지대라 처음에 가면 가끔 머리도 아프고 특히 수분을 많이 섭취하라고 조언을 해. 고산 지대라 운동 선수들에게는 폐활량에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지.

    오드리의 훈련을 위해 한동안 콜로라도에 머물기로 했고 가족이 흩어져 사는 게 힘들어서 작은 딸에도 콜로라도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어. 뉴욕에 친정 식구들이 있어서 콜로라도는 외롭게 느껴졌지만, 오드리를 위한 선택이었어.

    월드 아레나에서 태미 코치 레슨 외에도 안무, 스케이팅 스킬, 하네스, 오프아이스까지 정신없이 바빴어. 훈련이 모두 레슨스케쥴로 꽉 차 있었고 그렇게 많은 레슨비를 지출한 적이 없었어. 차후에는 일부 코치들을 정리하고 오드리가 꼭 필요한 코치들이랑 훈련을 했지만 콜로라도 초기에는 잘 몰라서 스케이팅 스킬부터 안무가까지 하네스 코치도 두 명 , 스피너 , 지상훈련 , 필라테스까지 하루 종일 바쁜 스케줄에 훈련비가 장난이 아니게 들어갔어.

    당시 일본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도 전지훈련을 자주 오던 싯점이라 또래의 외국 선수들과 훈련하는 것도 오드리에게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있었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랑 같은 링크에서 타다 보면 자극도 되고, 배우는 점도 있었어. 서로 다른 스타일과 루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심도 생기고, 훈련 분위기 자체가 더 집중되고 에너지가 생기는 장점이 있었지. 이런 점들은 장점이 되지만 단점도 있었어. 아마 오드리가 한인이라 겪었던 일이겠지만 좋은 경험은 아니었어. 콜로라도에서 훈련을 한 게 7년이었고 나는 콜로라도에서 오드리가 선수 생활을 끝낼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더 이상 코치나 훈련지를 옮기고 싶지는 않았거든 .

    콜로라도로 옮긴 첫 시즌을 보내고 오드리는 2019년 주니어부분 전 미 내셔널에서 은메달을 땄어. 쇼트는 좀 부진했지만 프리에서 잘해서 프리는 최고 점수를 받았어. 결과도 좋았고, 주니어로 국제대회 경험도 쌓아서 의미 있는 시즌이었어.

    태미는 선수도 많았지만 절대 편애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했어. 새벽부터 오후까지 쉬는 시간 외엔 온아이스에서 스케이트도 안 벗고 레슨하는 열정적인 코치였어.

    콜로라도의 장점은 미국 피겨연맹이 가까이 있어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도 이용할 수 있고, 연맹 관계자들이 자주 선수들을 체크해줘. 시니어 선수들은 부상이 생기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머물며 재활을 하기도 해. 많은 종목의 선수들이 이를 위해 찾기 때문에 다른 종목의 유명한 선수들을 만날수 있기도 했어.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
    2019 내셔널 주니어 포디윰

    2018-2019년엔 오드리는 태미와 탐 코치 두 분다에게 레슨을 받았어 . 하지만 얼마 못 가서 해드 코치인 태미만 레슨을 하게 되었어. 피겨계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 태미 갬빌 코치와 탐 자크라이섹 코치는 같은 브로드무어 월드 아레나에서 코칭을 함께 하게 되었지만 스타일도 다르고 지도 철학도 달라서 사이가 그렇게 좋다고 보긴 어려워.

    태미는 감성적이고 세심한 접근을 하는 반면, 탐은 분석적이고 시스템 중심으로 코칭하는 편이야. 이름이 있는 선수에게만 너무 올인하는 모습도 있었지. 지도 방식도 많이 다르고, 코치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한 환경이라 갈등이나 긴장감이 없긴 어려워. 특히 좋은 선수를 두고 코치 변경이나 레슨 시간 배정 같은 문제에서 신경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둘 다 한 링크에서 활동할 때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있었고, 일부 선수나 가족들이 코치 간의 관계를 의식하면서 움직여야 했던 경우도 많았어. 결국엔 각자 따로 자기 그룹을 두고 운영하는 식으로 정리가 됐지. 오드리는 태미와 더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어. 사춘기를 겪는 시기에 예민하고 섬세한 여성 코치가 더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지.

    2019 U.S. Nationals Championships Junior
    2019년 내셔널 경기때 태미 코치와 탐 코치

    Garden of Gods

    월드 아레나 웹사이트

    World Arena Ice Hall – Colorado Springs, Colorado

  • 유명 코치 밑에서 겪은 현실 이야기: 팀의 변화 # 5

    그때 라파엘 코치 팀은 라파엘 부인 베라, 안무나 스케이팅 스킬담당 나디아, 오프아이스 훈련하는 데니스까지 네 명이었어. 오드리가 라파엘 팀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 네 명한테만 레슨을 받았고, 나중에 몇 명이 더 합류하긴 했어.

    라파엘은 거의 매일 직접 가르쳤고, 베라랑 나디아는 교대로 수업했어. 오프아이스는 오후에 따로 스케줄이 있어서 그룹 수업도 있고 개인 수업도 있었어.

    하루 종일 아이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였지. 아침은 늘 건강하게 챙겨 먹였고, 점심은 도시락 싸서 링크로 가져갔어. 쉬는 시간엔 캘리포니아 날씨 즐기면서 스타벅스에 오드리와 앉아서 난 커피 한잔 마시고 오드리는 햇빛을 쐬면서 내가 직접 찍은 레슨 동영상을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하다 다시 훈련링크로 돌아왔어.

    온아이스 훈련 전에는 최소 세 시간은 몸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해서 항상 시간 맞춰 깨우고 준비시켰어. 정말 하루하루가 훈련 중심이었지.

    캘리포니아에 한인 커뮤니티가 커서, 아이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한의원 가서 침 맞고, 피겨 선수한테 좋다는 건 뭐든 다 찾아서 해줬어.

    그땐 모든 걸 코칭팀에 믿고 맡겼고, 처음엔 Glacier Falls 같은 로컬 대회에서 2년동안 노비스 , 주니어 부분 1등을 하기도 했지. 근데 랩 점프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고 , 코치들도 그 부분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분위기였어.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일본 유명 여자 선수랑 한국 여자 선수도 라파엘 팀에 들어오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어. 거기다 미국 시니어 그 당시 여자 탑 , 남자 탑선수도 있었으니까 더 그랬고.

    나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수 있는 분위기가 싫었고, 우리 애가 주니어시절 그 사이에서 피해를 볼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지. 실제로 몇 번에 코치의 불공평한 행동을 목격하기도 했고 .

    그러다 여름초 콜로라도에서 열린 ‘점프 온 잇’ 캠프에 라파엘이랑 오드리가 같이 초대됐고, 오드리가 라파엘 수업에서 시범을 보이게 됐는데, 거기서 일이 생긴 거야.

    점프온잇 캠프에서 있었던 일 :13살 오드리의 당황스러운 순간

    오드리가 열한 살쯤이었을 거야. 라파엘 코치에게 옮기기 바로 전 , 미국 피겨연맹이 처음 주최한 *점프온잇 캠프(Jump On It Camp)*에 참가하게 됐지. 미국에서 이름난 코치들이 초청되고, 요즘은 외국 코치들도 가끔 초대를 해.

    각 코치들은 본인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직접 점프 시범도 보이고, 참가한 스케이터들에게 피드백도 해줘. 또 강의를 하는 시간도 있었지. 미국 피겨연맹 관계자들, 심판들까지 다 와서 유망주도 발굴하고. 지금 미국 탑 선수들도 거의 다 이 캠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오드리는 이 캠프가 시작된 첫 해부터 참가했어. 처음엔 참가자로, 이후엔 시범을 보여주는 쪽으로 해마다 초대됐지. 싱글 선수만 대상이고 모두가 다 참가할수 있는 캠프는 아니었어. 전 해에 regionals, sectionals 에서 성적이 어느정도 있는 스케이터들을 대상으로 오픈하는 캠프였어 .오드리는 싱글 선수로 꾸준히 첫 해부터 늘 참여했지.

    그러던 라파엘과 2년차 되던 해, 오드리가 열세 살이었을 때였지. 라파엘 코치가 점프온잇 캠프에 초청됐고, 당연히 오드리도 같이 가게 됐어. 그때 라파엘이 자기가 맡은 강의 클래스 중간에 갑자기 오드리에게 앞에 나가서 스피치를 하라고 했대.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였는데 말이야.

    오드리는 스피치를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그날 뭐를 말할지 들은 적도 없었어. 수많은 스케이터들과 관계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갑자기 스피치를 하게 되니 열세 살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캠프가 끝나고 나서 여러 스케이터 부모님들이 내게 연락을 해줬어. 오드리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젊은 코치들도 “그건 아이한테 너무했어요”라며 소식을 전해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이야기 해 왔어.

    그날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 아무리 실력 있는 코치라도,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어린 선수를 갑자기 사람들 앞에 세우는 건 옳지 않다는 걸.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면, 최소한 오드리에게 사전에 어떤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콜로라도 스프링스 첫 방문때

    오드리는 그저 열심히 훈련해온 어린 스케이터였고, 스폰지처럼 코치가 시키는 대로 다 받아들이며 훈련하던 아이였어. 그래서 그런 코치의 행동이 더 깊은 상처로 남았던 거지.

    라파엘 코치는 오드리를 주니어 선수로 아끼긴 했고, 항상 시니어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게 해줬지만, 외국 선수들이 들어오고 이런 일까지 겹치면서 ‘이제는 라파엘 팀을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남편이 직접 캘리포니아로 가서 라파엘 코치를 만나, 우리가 팀을 떠나겠다고 예의를 갖춰 정중히 통보했지.

    Jump on it Camp / Group 별 사진
    위부터 : 탐 자크라섹, 고 프랭크 캐롤, 라파엘 아루트니안, 피터 요한슨, 태미 갬빌코치
  • 오드리의 새로운 시작, 라파엘 코칭팀에서의 2년 #4

    오드리 다리 랩(wrap)문제를 고치기 위해 코칭팀을 옮기게 됐는데, 그때 가게 된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라파엘 아루투니안 팀이었어. 첫 미팅 때 라파엘 코치가 오드리를 많이 칭찬해줬는데, 동시에 다른 부모들이랑은 절대 말 섞지 말라고 하더라. 누가 적이 될지 모른다고… (?)

    처음엔 미셸 콴 전설의 선수의 가족이 운영하는 이스트웨스트 링크에서 타다가, 라파엘이 레이크우드 링크로 옮기면서 우리도 따라갔어. 난 개인적으로 미셸 콴 아버님이 오드리 훈련 지켜보면서 피드백 주는 게 감사했는데, 라파엘 코치는 그걸 엄청 싫어했어. “부모는 그냥 부모로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강한 분이었지.

    그래서 코치 말대로 나도 다른 부모들이랑 거의 안 어울렸어. 원래 내가 막 친화적인 성격도 아니고. 라파엘은 영어실력이 엄청 유창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말은 끊이지 않는 스타일이었어. 상대방이 말을 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지.

    그렇게 오드리는 그 팀에서 2년 정도 훈련했어. 그때 애슐리 와그너, 마라이아 벨, 네이튼 챈과 아담 리폰같은 선수들이 시니어레벨에서 훈련하고 있었고, 여름엔 한국이나 일본 톱 선수들도 잠깐씩 와서 훈련하곤 했지. 꽤 자극도 많이 받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 여름엔 사카모토, 미야하라도 들린적이 있고 러시아 선수들도 가끔씩 들려서 많은 유명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수 있었기 때문에 오드리에겐 좋은 경험의 시간이 되었어.

    우린 뉴욕에서 아주 이사를 한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홈클럽은 뉴욕으로 유지하고, 훈련만 캘리포니아에서 했어.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오드리한테는 진짜 큰 경험이었어.

    첫 국제대회, 그리고 엄마의 마음

    캘리포니아 훈련시절, advanced novice 레벨로 미국 연맹에서 첫 국제 assignment를 받았을 때, 나도 아이와 함께 따라갔었어. 그게 2016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골든베어 대회였는데, 거기서 오드리가 생애 첫 국제 메달을 땄지.

    그 다음 해엔 2017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오픈에 Junior 레벨로 출전했는데, 이번엔 남편이 따라갔어. 오드리는 7위에 머물렀고, 그땐 일본의 리카 키히라, 한국의 김예림선수등 당시 국제적으로 잘하는 선수들이랑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서본 경기였어. 아이한테는 처음 겪는 국제 무대의 긴장감, 압박감 같은 걸 경험했던 거 같아.

    그 이후로는 국제 경기를 따라간 적이 없어. 부모가 따라가면 경비도 훨씬 더 들고, 미국에선 늘 연맹 측에서 동행하는 팀리더와 코치가 있어서 우리는 오드리가 14살 이후로는 주니어 그랑프리 같은 큰 국제대회도 혼자 보냈어.

    아이 혼자 먼 나라로 경기 가는 걸 볼 때마다… (이런 표현 적절할 수 있나 싶지만) 어린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우는 그런 기분이었달까.

    그게 아마 엄마로서의 마음이었을 거야.🥹🙏🏻

    2016 Golden Bear Zagreb, Croatia
    2017 Asian Open , Hong Kong
    with Mai Mihara (Lakewood ,CA)
    with Ashley & Adam
    2016 Summer Classic Novice
    2017 U.S. Nationals
    2017 Summer Classic Glacier Junior
    with Marin Honda
    2017 International Classic Salt Lake City
    with Team Rafael 2016-2017
  • 여름 캠프 그리고 캐나다 코치들과의 만남 #3

    — 오드리가 피겨를 배우며 겪었던 소중한 경험들

    오드리가 본격적으로 피겨를 시작하고 나서, 여름이면 새로운 캠프나 다른 스타일의 코치들한테도 배워보게 하고 싶었어. 실력 있는 다양한 코치들 밑에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그중 하나가 바로 캐나다에 토로토 크리켓 클럽.

    Toronto Cricket Club

    거기 스핀 코치였던 Paige Aistrop 코치와의 인연으로 그 분이 Brian Orser 코치와 연결해줘서 오드리가 게스트 멤버로 크리켓에서 훈련할 수 있었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도 다르고, 자극도 많이 받아서 좋았어. 특히 링크안은 부모님들이 소파에 앉아서 볼 수있는 편안한 환경이라 아마 어떤 부모님들이 방문해도 좋아할거야.

    또 Barrie, Canada에 위치한 Mariposa 스쿨에서는

    Mariposa Skating School

    Doug Leigh 코치님께 배웠어. 그분은 Brian Orser나 Jeffrey Buttle도 지도했던 분인데, 오드리가 10살, 11살쯤 갔을 때도 이미 연세가 많으셨거든. 그래도 열정이 대단하셔서 인상 깊었어.

    그리고 RTC (Richmond Training Centre)

    Richmond Training Centre

    캐나다에 있는 러시아계 코치인 Andrei Berezintsev랑 Inga Zusev 코치에게도 다녀왔어. 우리가 뉴욕 동부에 살다 보니, 캐나다가 가까워서 여러 곳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 거지.

    새로운 링크환경, 마음 따뜻한 코치들

    뉴저지 아이스하우스와 오드리에게 모든 기본기를 가르친 코치였던 Craig Maurizi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롱아일랜드 뉴욕집에서 더 가까운 링크로 옮기게 됐어. 그곳에서 Mary Lynn Gelderman 코치와 (Clark Gillies Arena -Dix Hills Ice Rink)1년 정도 함께했는데, 정말 좋은 분이셨어.

    보통 코치들은 외부 코치에게 배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Mary Lynn 코치는 아이가 필요하다면 다른 데 가서도 배울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 그래서 유명 코치들이 여는 여름 캠프도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고, 그런 좋은 관계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거 같아.

    뒤늦게 알게 된 점프 문제

    오드리는 어려서부터 점프를 빨리 익혔어. 덕분에 실력도 빨리 올라갔고, 주목도 많이 받았지. 근데 그만큼 점프 테크닉이 정확히 다듬어지지 않았던 거야.

    특히 랩(wrap) 문제는 나중에야 알게 됐어. 부모지만 피겨 코치가 아니다 보니 초반엔 뭔지도 몰랐고, 한참 지나서야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12살 무렵부터는 점프 테크닉을 제대로 교정해줄 수 있는 전문 코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문제를 파악했기 때문에 오드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테크닉 전문 코치를 찾다 결국엔 오드리가 12살에 집을 떠나 동부에서 서부로 가게 된 계기가 된 거였어.

    ****피겨 점프에서 랩(wrap)이 있다는 건, 점프할 때 두 다리가 반듯하게 모이지 않고 ,자유 다리 (회전 안 하는 다리)가 회전 다리를 감듯이 꼬이는 걸 말해 . 깔끔하지 않아서 감점 대상이야. 왜 생기냐면, 어릴때 빠르게 점프를 익히느라 테크닉을 제대로 안 배운 경우 , 회전축이나 코어가 약하거나 , 유연성/정렬이 부족한 경우 , 그냥 코치가 지적해 주지 않아서 몸에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도 많아. 고칠수 있냐고? 응, 고칠 수는 있어. 근데 시간이 걸리고 꾸준한 연습이 필요해. 공중자세를 제대로 연습하고 회전축 바로잡는 훈련하고 낮은 점프부터 테크닉 다시 익혀야 해. 그래서 꼭 어려서 기초가 중요하단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어.

    Ballet class 🩰
    Toronto Cricket Club
    MIDDLE ATLANTIC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 Intermediate Level
    Coach Mary Lynn Gelderman & Samantha Cesario

  • 가족보다 훈련이 우선이었던 시간 #2

    우리 가족은 원래 뉴욕 롱아일랜드, 서폭 카운티 쪽 바닷가 근처에 살았어. 그러다 큰애가 캘리포니아 레이크우드 링크에서 훈련하게 되면서, 나랑 큰애는 켈리포티아 오렌지 카운티 싸이프레스에서 따로 지냈고 남편이랑 친정 부모님이 작은 딸을 돌봐주셨어.

    그 시기가 진짜 많이 힘들었어.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작은 애가 매일 저녁 페이스타임으로 나랑 통화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더라. 큰 애가 피겨를 하면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큰 애 훈련과 스케줄 중심으로 흘러갔지.

    사실 처음엔 그냥 재미 삼아 그룹 레슨으로 시작했는데, 아이가 재능 있다는 말에 여름엔 레이크 플래시드에서 열리는 피겨 캠프까지 따라가게 됐어. 그 캠프에서 한 연세 있으신 코치님이 우리 아이를 유심히 보더니, 몸도 잘 쓰고 정말 재능 있다고 칭찬해 주셨어.

    그분이 누구셨냐면… 알고 보니 미셸 콴의 스핀 닥터로 불리던 에블린 크레이머 선생님이셨더라고.

    그 말을 듣고 ‘와, 우리 애가 진짜 재능이 있구나’ 처음으로 느낀거지.

    뉴저지 아이스 하우스:

    좀 더 제대로 피겨를 배우게 하려고 뉴저지 아이스하우스에서 새로운 코치를 찾았어. 매일 한 시간 반 넘게 운전해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결국 1년 정도는 뉴저지에 아파트를 얻어서 거기서 학교도 다니게 했었지.

    롱아일랜드에서 뉴저지까지는 진짜 거리도 멀고, 교통도 만만치 않았거든.

    그렇게 훈련하면서 9살에 처음 쥬비나일 내셔널에 나갔어. 클린했는데도 9등이었어. 실력도 있었지만, 워낙 어린 편이라 그런가 싶더라. 그때 상위권 애들은 보통 12~13살이었고, 아나벨 모르조프도 그 그룹에 있었어. 모르조프 코치 딸이었는데, 우리랑 같은 링크에서 탔지.

    지금은 아이스댄스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

    Eastern Sectionals

  • 빙판 위에서 시작된 내 아이의 꿈: 피겨맘의 첫 이야기 #1

    9살의 오드리 regionals 대회 사진

    나는 미국에서 딸아이가 7살 때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면서 피겨맘의 삶을 시작했어. 그냥 취미로 시작했던 스케이팅이 점점 진지한 여정이 되었고, 9살에는 첫 U.S. Nationals 에 Juvenile 레벨로 출전하게 되었어.

    그 당시만 해도 Juvenile, Intermediate, Novice, Junior. Senior순으로 Regionals – Sectionals -Nationals 로 가는 길은 정말 쉽지는 않았어. 그만큼 그 경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지. 특히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훈련하던 딸 아이의 꼬맹이 시절, 어린 딸과 함게한 그 시간들이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몰라.

    12살이 되던 해 , 우리는 큰 결심을 하고 딸 아이의 훈련과 피겨 선수로의 미래를 생각해서 훈련지를 캘리포니아로 옮겼어. 그곳에서 세계적인 코치인 라파엘 아르투니안 코치에게 직접 지도를 받게 되었지. 선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었어.

    그리고 2년 뒤, 우리는 다시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어. 딸 아이의 훈련 환경, 팀, 그리고 더 나은 피겨선수로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