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강을 함께 건넌다는 것

아이의 세계가 커질수록,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돌아보면,우리 아이의 사춘기는 유난히 조용했다.
티를 많이 내는 편도 아니었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다. 밝고 장난기 많던 모습도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조용함 속에서, 아이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땐 하루 연습이 끝나고 나오면서 어땠는지, 뭐가 재미있었는지, 이야기꽃이 끊이질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차 안이 낯설 만큼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건 침묵, 아니면 짧은 “It was good.” 한마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대화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엔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조용한 시간도 우리가 함께했던 중요한 ‘동행’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사춘기와 훈련. 두 가지가 겹치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힘들고, 엄마에게도 혼란스럽다.

기록 하나, 점프 하나에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건 결국… 가족, 그리고 엄마였다.

남편에게도 아이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아이가 상처받고 있거나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혼자 고민도 참 많이 했다.

그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걸.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법, 기다리는 법,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도 말없이 삼키는 법.
(이게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엄마들은 다 알 거다.)


이제 아이는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되었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시기는 많이 지나갔다.

예전처럼 매일 훈련에 따라다니지도 않고,이젠 아예 멀리서 훈련을 하기 때문에 빙판 위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경기 전날 밤, 함께 긴장하던 그런 날들도 이젠 더 이상 내 곁에는 없다. 하지만 부모가 어찌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을까?

멀리 있어서 걱정되는 부분도 참 많다. 성인이라지만… 여전히 걱정은 끝이 없다. (80살 된 어머니가 50된 딸을 걱정하듯)


모든 걸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성인’이 된 딸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딸은 자기 길을 걷고 있고, 나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역할이 됐다는 걸.

그래도 가끔은, 예전처럼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오늘 정말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혹은 “오늘 연습 진짜 좋았어.” 하며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보내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서 아직도 그때 그 작은 발로 스케이트를 끌던 어린 시절 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느낀다.
사춘기 때 함께했던 그 ‘침묵의 시간’들이 지금 우리 관계의 단단한 바탕이 되어줬구나. 그 시절엔 정답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서툴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내가 한 발 물러서 있을 때도,사랑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의 아이가 조용히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면, 그 어머니께 조심스레 말해주고 싶다.

서운하고나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충분한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시간은 참 빨리 가더라.
그러니 그 침묵조차도 소중하게 기억되기를.